공포 연극, 흉터
공포 연극, 흉터
18년 07월 20일
충장아트홀로 발 걸음을 옮겼다.
바로 약 3년 만에 연극을 보기 위해서였다.
https://pixabay.com/ko/철조망-이별-아픔-나눔-접근금지-상처-뾰족-철-쇠-833153/
#드라마, 영화 > 연극 티켓
연극.
전역을 하고 나는 연극보다는 영화를 더 찾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영화를 찾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친구가 연극을 보지 않겠냐고 했었고,
나는 흔쾌히 연극을 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18년 07월 20일 충장아트홀을 찾게 되었다.
친구는 내게 완전 겁먹고
놀라면서 보는거 아니냐고 놀려댔지만
나는 실은 놀라도 혼자서 움찔하고 만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이기도 하거니와 순간의 감정을 곧장
외부로 노출을 시키지도 않으려고 해서 인 것 같다.
별 기대 없던 나에게
공포 연극, 흉터는
연극에 큰 기대를 안게 해주었다.
차라리 영화나 드라마를
더 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은 비용도 비용 이거니와 까놓고 이야기해서
광주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연이 아니다.
#감탄하게 되는 연극
눈 앞에서 공연을 하는데 공포라니..
연극의 표현범위가 매우 넓다는 것을
이 공연을 통해 깨달았다.
분명 스타킹으로 나왔던 액자가
다시 딱딱해지는 그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암흑같은 곳에서
그새 나무판자를 끼얹었는지
배우가 직접 눌렀을 때
무대를 활용하는 표현법에 놀랐고
마치 진짜 정신이 나간 것처럼 연기를 하는 배우
(이것은 명백히 설명하지만, 욕이 아니라 칭찬임)
진짜로 이중인격처럼 연기하는 이 배우를 보며
사람들을 보고 나무라고 칭하는 배우들을 보며
정말 드라마나 영화에서
애매하게 연기하는 배우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매우 많이 하게 되었다.
https://pixabay.com/ko/킬러-공포-지미-jemmy-prybar-크로우-바-악-820017/
#공포 연극?!
또한, 공포 연극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다.
연극은 본래 바로 앞에서 하는 것인데
공포라는 것은 갑자기 훅 들어오거나
예상을 뒤엎어야 공포감이 형성되는데
그것을 연극이라는 장르에서 할 수 있을지가
매우 궁금했다.
결론은 대성공이다.
연극의 한계를 연극의 보조장치
즉, 무대설계, 음향, 조명 등을 매우 다양하게 활용하여
공포감을 조성했다.
연극.
그것은 바로 눈 앞에서 흔히 말하는
NG없이 연기를 하는 배우들과
철저하고도 치밀한 무대 설계를 겯들여야만
비로소 완벽한 연극이 되는 것이였다.
# 남는 아쉬움
건축학도로써
연극이 지원이 약하다는 것에
매우 실망스럽다.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생생한 작품임에도
지원이 너무 적다.
충장아트홀은
광주에서 그래도 나름 오래된
연극장으로 알고 있다.
그런 연극장이
바로 앞 사람 머리에 가려
무대를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
머리를 좌우로 움직여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다.
먼 훗날의 이야기이지만,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이런 문화시설 공간도 설계해보고 싶다.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투자를 해서라도 연극을 되살리고 싶다.
그만큼 "공포 연극, 흉터"는
나에게 연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어준 작품이다.
https://pixabay.com/ko/상-심-가슴-통증-상처-고통-심장-마비-성인-애정-가슴-1846050/
# 흉터
사람마다 몸에 흉터가 남기 마련이다.
그 흉터가 매우 흉측하여
흉터 제거 수술을 받는 이들도 있다.
흉터는
그 사건이 나에게 미친 결과를 이야기한다.
손에 칼이 베였을 때
우리들은 그 흉터를 보고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의식 중에 노력한다.
어쩌면 우리들은 말에도
흉터가 생길지도 모른다.
똑같은 말을 들으면
예전의 기억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와 같은 곳에서
똑같은 말이
복선이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가 되는 것을
흔히 목격한다.
그래서 우리가 흉터가 흉측하다고 하는 것은
예전의 실수를 되새기기 싫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 흉터를 보며
다시 그 순간을 떠올리기 조차도 싫기에
사람이 살면서 가져야 할
숙명과도 같은 것 같다.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다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어릴 적 추억 중에
떠올리기 싫은 추억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흉터와 훈장의 차이는
정말 시각의 차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흉터를
좋은 말로는
훈장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신을 위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훈장이 아닐까?
당신이 생각하는 그 흉터
그 순간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한
훈장이라고 생각해보는 시점에서
그 고통의 순간을 이겨낸 것이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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